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내야 한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투병 중인 아버지가 27년간 홀로 키운 중증 자폐 아들의 거처를 찾아 천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단 한 곳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사연은, 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저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27년을 버텼는데, 왜 시설 하나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이가 처음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진단을 받았을 때, 아버지는 의사가 아닌데도 영어 자료까지 찾아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반복적 행동 패턴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 장애를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자폐'라는 단어 자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아버지는 그 낯선 공포를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제 아이도 또래와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서, 초기에 병원 문을 두드리던 그 막막함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은 가늠이 됩니다. 진단명보다 더 무거운 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었을 테니까요.
아들이 성인이 된 뒤,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문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복지부 1급 장애인으로 등록된 26살의 중증 자폐인. 그런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천 곳에 가까운 시설을 찾아다녔지만 접수조차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중증 자폐인은 지적 장애인에 비해 훨씬 많은 전문 인력과 돌봄 예산이 필요하지만, 현행 보상 체계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시설들이 중증 자폐인을 거부하는가
시설이 냉정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시설의 거부가 단순한 무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구조를 들여다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에 있었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력 배치 기준은 장애 유형과 등급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어 있지만, 중증 자폐인처럼 고강도 행동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 대한 별도 예산 체계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입니다. 현장에서 '젊은 자폐인을 받을 인력이 없다'는 답변이 반복되는 건 그냥 핑계가 아니라 현실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중증 자폐인은 지적 장애인 대비 훨씬 높은 행동 지원 인력이 필요함
- 현행 시설 보상 체계는 돌봄 강도에 비례하지 않아 시설 수용 기피 현상 발생
- 26세 이상 성인 중증 자폐인은 90% 이상의 시설에서 접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 체험 입소 후 4시간 만에 귀가 조치되는 사례도 실제로 발생
시설이 아니라 '마을'이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3일 만에 8천만 원의 자발적 후원금이 모였고, 단 한 달 만에 아들 재원 씨가 머물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숫자 자체도 놀랍지만, 제가 더 주목한 건 그 공간이 '시설'이 아닌 '마을'이라고 불린다는 점이었습니다.
탈시설화(脫施設化)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탈시설화란 장애인이 폐쇄적인 집단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일반 시민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 방향을 말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된 흐름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인 단계입니다.
재원 씨가 정착한 곳은 문이 잠긴 채 갇혀 지내는 기존의 장애인 거주시설과 달리, 개방된 공간에서 아침마다 농업 노동을 하고 직접 키운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 즉 장애인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상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모델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입니다.
3개월 만에 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자해가 사라졌다는 결과는, 환경이 사람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중증 자폐인에게 이 방식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환경이 달라지면 아이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건 작은 차이에서도 분명히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낸다는 것의 진짜 의미
아버지는 단풍이 물들면 아들과 캠핑을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27년을 함께 살았던 아들과의 재회를 위한 소원이 고작 1박 2일 캠핑이라는 사실이 저는 한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캠핑 당일, 재원 씨는 단 1초도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새벽 3시에 아버지에게 직접 옷을 입혀주고 신발을 신겨주며 산책을 이끌었습니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들이 그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셔틀버스가 오자, 재원 씨는 아버지를 한 번 바라보고는 스스로 버스에 탔습니다.
독립(Independence)이라는 단어를 저는 그 장면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독립이란 단순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상태가 아니라, 타인의 도움을 받더라도 자신이 살아갈 곳을 인식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재원 씨가 버스에 오르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그 의미의 독립처럼 보였습니다.
제 아이도 언젠가 저 없이 살아가는 날이 옵니다. 그때 아이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지금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의 속도를 믿고 기다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이 사연을 보면서 더 깊어졌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낸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부모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미리 만들어두는 일이니까요.
출처: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이후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주거 모델은 아직 공급이 수요를 크게 밑도는 상황입니다. 부모가 곁에 있는 동안만 돌봄이 유지되는 구조라는 것은 통계가 아니더라도, 이 사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실감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중증 자폐인은 왜 일반 장애인 시설에 입소가 어려운가요?
A. 중증 자폐인은 지적 장애인과 달리 고강도 행동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더 많은 전문 인력과 예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행 장애인 거주시설의 보상 체계는 돌봄 강도에 비례하지 않아, 시설 입장에서는 수용 자체가 재정적 부담이 됩니다.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의지 부족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두 가지가 모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탈시설화가 모든 중증 자폐인에게 적합한 방식인가요?
A. 탈시설화가 이상적인 방향이라는 의견도 있는 반면, 고강도 지원이 필요한 중증 자폐인에게는 오히려 안정적인 구조화된 환경이 더 효과적이라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개인의 장애 특성과 지원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전문가들 사이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재원 씨의 사례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줬지만, 이것이 모든 경우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A. 성인기 이후의 주거와 자립을 위한 준비는 이른 시작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장애인 거주시설 대기 등록, 발달장애인 지원센터 연계, 성인기 전환 교육 프로그램 참여 등을 일찍부터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다만 이 모든 준비가 부모 혼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도, 저는 이 사연을 보며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Q.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지적 장애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어려움, 반복적 행동 패턴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 장애입니다. 지적 장애는 지적 기능과 적응 행동 전반의 유의미한 제한을 의미합니다. 두 진단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반드시 지적 장애를 동반하지는 않습니다. 돌봄 방식과 필요한 지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시설 수용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이 사연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감동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 한 사람이 27년을 버텼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이 사회가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재원 씨가 정착한 마을이 기적처럼 보이는 건, 그것이 예외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외가 언젠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 특별한 사연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요. 제 아이도, 재원 씨도, 각자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